검색결과
' 청계피복'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2,07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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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사료 1,99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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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피복 노동조합 정상활동에 대한 협조 요청[수신:김용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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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079093
날짜 : 1984.05.2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청계피복 노동조합 정상활동에 대한 협조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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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피복 노동조합 복구대회 이후 주요 사건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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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079099
날짜 : 1984.04.1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84년4월8일~4월14일까지 청계피복 노동조합 복구대회 이후 주요 사건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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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피복노동조합의 합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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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431627
날짜 : 1984.05.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설문원
요약설명 : 청계피복노동조합의 어제와 오늘 청계피복노동조합의 합법성 여부에 관한 법률적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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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료 3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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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피복노조 사무실에 기습적으로 들어가 청계노조사무실 봉쇄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중인 청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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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10671
날짜 : 1987.07.15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친뒤 '청계피복노조 정상활동보장'을 요구하고 '사무실 봉쇄를 즉각 철회하라'는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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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청계피복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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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915867
날짜 : 1988.11.13
구분 : 사진필름류 > 필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참가한 청계피복노동조합이 여의도에 도착하여 노동악법철폐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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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피사무실 폐쇄 위협에 항의 농성을 벌이는 청계피복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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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00653
날짜 : 1985.10.28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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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사료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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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컬렉션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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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피복노조 노동교실 탄압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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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청계피복노조’ 관련 100여 건의 사료 중 사건 관련 사료 총 5건, ‘노동교실’ 조건으로 총 10건, ‘이소선’ 조건으로 총 126건 중 사건 전후 사료 총 25건, ‘장기표’ 조건으로 총170여 건 중 관련사료 7건, ‘민종덕’ 조건으로 총 22건 중 관련사료 2건, ‘평화시장’ 조건으로 총 94건 중 관련사료 38건, ‘한국노동인권헌장’ 조건으로 총 1건이 검색되었다. 평화시장사건대핵위원회 명의의 <어머니와 노동교실을 찾자> (등록번호 : 443635), 평화시장근로자인권문제협의회 명의의 성명서 <성명서 [노동운동 탄압, 노동교실 탄압 반대, 이소선 여사 비롯한 구속자 석방 등]> (등록번호 : 91838), 평화시장노동자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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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피복노동조합결성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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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청계피복노조와 관련하여 366건이 소장되어 있다. 청계천 일대 평화시장 등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는 피복업계 노동자들의 임금실태 보고서 <시장상가 피복제품업체 근로자의 임금실태 조사결과> (등록번호 : 512069), 윤보선, 함석헌 등 15인의 사회 각계 인사들이 청계피복노조 탄압에 항의하여 발표한 <국민에게 드리는 글> (등록번호 : 528466), 1981년 서울시의 청계노조 해산명령에 대하여 명령철회를 요구하며 발표한 <성명서> (등록번호 : 333357), 전태일 죽음 이전부터 청계노조 20주년의 역사를 기록한 <청계노조 20년 투쟁사> (등록번호 : 441463), 1984년 청계피복노조를 복구하여 정상화시킬 것임을 주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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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 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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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노동운동 관련 사료이며 전태일기념사업회 정간물 『사람세상』, 기념식 관련 자료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전태일의 일기 중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 형식으로 쓴 글 <대통령각하> (등록번호 : 445053), 전태일 사후 장례식 조건 타결 후 운구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 <오열하는 사람들과 운구하는 사람들> (등록번호 : 733459), 1981년 청계피복노조 해산과정에서(추정) 계엄포고령 및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된 이소선 지원 및 전태일 추모사업을 위한 모금을 알리는 자료로 전태일의 일기와 남긴 글을 편집 하여 작성된 <나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등록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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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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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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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각계에서 응원과 격려가 쏟아졌다. 1970년 11월 27일, 전태일이 죽은 지 14일 만에 청계피복노조 결성식이 열렸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 560명을 대표한 대의원 56명이 모인 자리에서 소선은 입을 열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청계피복노동조합을 지켜냅시다. 나 또한 몸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내 아들, 태일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의 노동자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그날까지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노동조합을 지켜내기는 쉽지 않았다. 사장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을 받아주지 않았고, 자기 직원들에게도 노동조합에 가입하기만 하면 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일꾼들에게는 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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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결한 영혼, 조영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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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위해 청계피복노조의 민종덕이 찾아왔다. “이제 평전에 조영래 변호사님 이름을 넣어도 되겠습니까?” 그의 간곡한 말에 조영래는 힘겹게 미소 지었다. 말없는 동의였다. 출판사는 곧 《전태일 평전》이라는 제목을 붙여 개정판 작업에 들어갔다. 그는 끝내 개정 증보판을 못 보고 만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영래는 그가 쓴 《전태일 평전》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청죽처럼 더욱 푸르게 되살아나고 있다. 글 박선욱(시인, 평전작가) 1959년 나주 출생. 1982년 시 〈누이야〉외 3편으로 제1회 실천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으며 이후 대표작으로 《그때 이후》《다시 불러보는 벗들》《세상의 출구》 등의 시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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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이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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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청계피복노조에 해산 명령을 내리고 노조 사무실을 폐쇄했다. 청계피복노조는 해산 명령을 거부하고 치열하게 싸웠다. 그 과정에서 이소선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기도 했다. 청계피복노조는 1987년까지도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전두환이 물러나고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야 합법성이 인정되었다. 전태일과 같은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유가족협의회를 만들어야 했다. 1986년 8월 12일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가 출범했다. 이소선은 초대 회장에 뽑혔다. “저는 지식이 없어 회장 같은 것은 못합니다. 그냥 여러분과 함께 싸우는데 쫓아다니는 그런 일밖에 못해요.” 한사코 거절했지만 회원들의 간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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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아카이브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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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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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자 : 송철원
일자/장소: 2019. 8. 22 / 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청계피복노조원들로 구성된 청우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종인은 전남 영암 출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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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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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자 : 이영재,정호기
일자/장소: 2018. 6. 24/4.9통일평화재단
요약설명 : 과정, 1975년 청계피복노동조합 조합원들의 활동, 1997년 9·9투쟁과 이로 인한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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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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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자 : 이영재, 정호기
일자/장소: 2018. 6. 22/4.9통일평화재단
요약설명 : 청계피복노동조합 조합원들의 활동, 9·9투쟁과 이로 인한 성과와 피해, 청계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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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사료 1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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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가주식회사와 타협되지 않아 청계피복지부 결성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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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70.11.23
분류 : 분류없음 > 기층민중
요약설명 : 동 상가 종업원들의 노조 결성을 위해 종업원들의 대표로 가칭 전국연합노조청계피복지부를 추진 중이던 노조는 노조사무실을 내어준다던 상가주식회사와 23일 오전까지 타협을 이루지 못했다.『동아일보』 1970.11.23.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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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피복노조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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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70.11.27
분류 : 분류없음 > 기층민중
요약설명 : 평화, 동화, 통일상가 등 청계천 6가 일대 피복상가의 전국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노조가 27일 하오 결성, 위원장에 김성길 씨(노총 국제부차장)가 뽑혔다. 이날 결성대회에서는 최종인 씨 등 4명의 부위원장도 뽑았다.『경향신문』 1970.11.28. 7면; 『중앙일보』 1970.11.28. 7면; 『한국일보』 1970.11.27.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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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연합노조 청계피복노조, 새마을 노동교실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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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73.5.21
분류 : 민주화운동 > 노동
요약설명 : 5월 21일 서울평화시장 청계피복 상가 안에 노동자들의 교양과 기술교육을 위한 새마을 노동교실이 개관되었다. 청계피복노조는 조합원 1만5천여 명이 마련한 50평짜리 교실에서 기술교육반(20평), 교양교육반(20평), 도서관(10평)으로 나뉘어 실습교양 교육을 통한 조합원들의 의식 향상을 목적으로 노동교실을 열었다. 기술교육반에서는 견습직공들에게 3개월 과정으로 미싱, 재단 등 각종기술을 가르치며 교양교육반에서는 중등과정과 사회상식 등 일반교양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아시아-아메리카 자유노동기구(이사장 조지 미니)가 이 교실에 미싱 7대, 녹음기, 영사기 등 3백만원 어치의 교육기재를 보내왔다.『경향신문』 197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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